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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과 냄새, 계급을 그리는 법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대사보다 계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택네 가족이 반지하에서 박 사장네 저택으로 올라가는 그 긴 계단들, 그리고 다시 폭우 속에서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내려가던 그 장면. 봉준호는 계급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카메라를 위나 아래로 움직인다. 그것만으로 관객은 몸으로 계급을 느낀다. 특히 '냄새'라는 장치는 정말 잔인할 만큼 정직했다. 돈으로도 지울 수 없는, 반지하 냄새라는 설정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소름이 돋았다. 계급은 시선이 아니라 후각으로도 차별한다는 걸, 봉준호는 알고 있었던 거다. 박 사장이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를 언급하는 그 짧은 장면 하나가, 어떤 긴 대사보다도 더 잔인하게 계급의 선을 그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시각적, 감각적 상징이 자막 없이도 전해지니까 언어가 달라도 관객들은 똑같이 불편해지고, 똑같이 찔린다. 그게 이 영화가 국경을 넘은 첫 번째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만드는 연출, 그게 봉준호식 계급 서사의 시작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술팀이 반지하 세트를 실제 지형과 습도까지 계산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집요함이 화면 밖에서도 느껴졌다. 계단 하나, 창문 각도 하나까지 계급을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좋은 연출은 이렇게 일상까지 따라붙는구나 싶었다.
반지하에서 태어나 세계로 간 이야기
솔직히 처음엔 의아했다. 반지하라는 공간, 짜파구리라는 음식, 이렇게까지 한국적인 디테일로 채워진 영화가 어떻게 오스카를 휩쓸었을까. 그런데 다시 보니 답은 오히려 간단했다. 봉준호는 가장 로컬한 이야기를 가장 정직하게 그렸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직함이 보편성이 됐다. 미국 관객도, 유럽 관객도 반지하라는 공간은 몰라도 '내가 저 위로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감정은 다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 지점에서 좀 짠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저 계단 밑에 서 있어 본 적이 있다는 뜻이니까. 봉준호가 인터뷰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인용했을 때, 나는 그 말이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한다고 느꼈다. 반지하를 지우고 그럴듯한 서구식 배경으로 바꿨다면 오히려 이 영화는 힘을 잃었을 거다. 결국 세계는 반지하를 이해한 게 아니라, 반지하가 상징하는 감정을 이해한 거다. 로컬을 지우지 않고도 세계와 통할 수 있다는 걸, 봉준호는 증명해버렸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개봉한 이후로 오히려 한국적인 소재를 더 적극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세계화를 흉내 내는 것보다, 자기 동네 냄새를 정직하게 담는 쪽이 더 멀리 간다는 걸 다들 눈치챈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게 봉준호가 남긴 가장 실용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가 갚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
인터뷰에서 봉준호가 했던 말이 오래 남는다. 자신도 계급이라는 계단 어딘가에 서 있는 사람이고, 이 영화는 그 자리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시작됐다는 뉘앙스의 말이었다. 나는 그게 좀 뜻밖이었다. 성공한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이 여전히 빚진 마음으로 카메라를 든다는 사실이.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봉준호 영화의 진짜 힘 아닐까. 계급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함께 부끄러워하는 시선. 그래서 〈기생충〉은 가진 자를 악당으로, 못 가진 자를 피해자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애처롭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잘못이 있다. 박 사장 가족도 순진할 뿐이지 딱히 악하지는 않고, 기택 가족도 절박할 뿐이지 딱히 선하지만은 않다. 그 어중간한 균형이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이 균형 감각이야말로 봉준호가 오래도록 갚고 있는 어떤 빚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갚지 못한 빚이, 결국 전 세계 관객의 마음까지 두드린 거라고 생각한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그가 트로피를 들고도 어딘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던 게 기억난다. 나는 그 표정이 연기가 아니라고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여전히 자기 자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태도. 그게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