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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영화야, 실제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꽤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게 다큐멘터리인지 극영화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건 내 착각이 아니라 감독이 의도한 결과였다. 그는 전문 배우 대신 실제 그 지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웠다. 대본은 있지만 대본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배우들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그냥 자기 삶을 살아냈다. 그 결과 스크린에는 묘한 리얼리티가 스며들었다. 나는 이 장면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감독이 재구성한 허구인지 판단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일 자체가 애초에 무의미했다는 걸. 키아로스타미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이미 현실은 조금씩 변형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굳이 그 경계를 명확히 하려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흐릿함을 하나의 미학으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그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다시 찍는 방식까지 시도했는데, 그럴 때마다 영화 속 현실은 한 겹씩 더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내 일상까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 그게 좀 낯설면서도 묘하게 위안이 됐다. 어쩌면 우리 모두 매일 각자의 삶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걸음으로 세상을 다시 본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고 나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주인공 소년은 친구의 공책을 실수로 가져오고, 그걸 돌려주기 위해 옆 마을까지 몇 번이고 뛰어간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별것 아닌 심부름이지만, 아이에게는 세상 전부를 건 모험이었다. 카메라는 소년의 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따라간다. 언덕과 지그재그 담벼락이 만들어내는 화면 구도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그 롱테이크 안에서 나는 소년의 숨소리, 흙길의 먼지, 저녁노을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키아로스타미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삶과 죽음, 책임과 우정 같은 커다란 질문들이 조용히 스며 나온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소한 일에 무심해졌을까 생각했다. 어릴 때는 노트 한 권도, 약속 하나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감독은 화려한 대사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그저 한 아이의 걸음걸이만으로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게 진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함이 이렇게 강력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뒤로 나는 누군가의 사소한 부탁도 함부로 흘려듣지 않게 되었다.
체리 하나가 전하는 삶의 가치
《체리 향기》는 199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꽤 무겁다.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자신이 죽은 뒤 시신을 묻어줄 사람을 차로 태우며 찾아다니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무겁다기보다 오히려 잔잔한 온기를 느꼈다. 남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그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망설이거나, 혹은 삶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들려준다. 어떤 노인은 자살을 말리며 자기가 목을 매려다 열매 하나를 먹고 마음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장면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 대화들 속에는 어떤 거창한 메시지도, 정치적 구호도 없다. 그냥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키아로스타미가 얼마나 인간을 신뢰하는 감독인지 느꼈다. 그는 관객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 질문을 조용히 던져놓고 물러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카메라 뒤편, 촬영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현실로 되돌린다.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삶이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 찍고 있는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 그리고 그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거창한 구호 하나 없이도, 그는 나를 오래도록 흔들어놓았다.

《체리 향기》의 주인공 '바디' 역을 맡은 배우 호마윤 에르샤디(Homayoun Ershad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