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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영웅 <오디세이> 와 마블속의 영웅 <스파이더 맨>


 이상한 우연이 하나 있어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서도 자기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아요. 걸인 행세를 하고, "시논"이라는 가짜 이름까지 대면서 자기 정체를 숨기죠. 그런데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는 아예 다른 이유로 얼굴을 가려요. 텔레마코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 말고, 놀란이 그를 캐스팅하기 전까지 홀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캐릭터, 스파이더맨이요. 스파이더맨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덮은 채 도시를 뛰어다니는 히어로잖아요.
 한쪽은 3천 년 된 서사시의 왕, 한쪽은 마블 세계관의 고등학생 히어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두 캐릭터를 겹쳐놓고 보면 "얼굴을 숨긴다는 것"이 이야기 안에서 얼마나 오래되고, 얼마나 집요하게 반복되는 장치인지가 보여요.

오디세우스의 가면 — 숨어야만 돌아갈 수 있는 남자

오디세우스가 정체를 숨기는 건 단순한 서스펜스 장치가 아니에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 자기 왕국에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환영이 아니라 그의 자리를 노리는 구혼자들이었잖아요. 오디세우스가 곧바로 "내가 왕이다"라고 밝혔다면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의 가면은 생존의 도구예요. 동시에 그 가면은 그가 더 이상 트로이 전쟁 때의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걸인 행세를 하며 자기 궁전에서 모욕당하는 시간을 견뎌야만, 비로소 왕좌를 되찾을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거죠. 가면은 그를 지켜주는 동시에, 그를 낮추는 장치인 셈이에요.

스파이더맨의 마스크 — 지키기 위해 숨기는 얼굴

  피터 파커의 마스크는 정반대의 논리로 움직여요. 그는 왕좌를 되찾으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평범한 삶(메이 이모, 학교 친구들, 좋아하는 여자아이)을 지키기 위해 얼굴을 가려요.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마다 시리즈 전체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마스크가 벗겨진다는 건 단순히 "누가 스파이더맨인지 밝혀진다"는 게 아니라, 그가 지키려던 평범한 삶 전체가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까 오디세우스의 가면이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숨김"이라면,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숨김"이에요. 같은 장치, 다른 목적. 이게 신화와 슈퍼히어로물이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자주 겹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에요.

스필버그도 오랫동안 이 질문을 던져왔다

  재미있는 건 스티븐 스필버그도 이 "숨겨진 정체"라는 주제에 유독 집착해 온 감독이라는 거예요. 《E.T.》에서 외계인은 벽장 안에, 인형들 사이에 숨어야만 살아남고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아예 직업 자체를 위조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스필버그의 카메라는 늘 "숨어야만 하는 존재"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왔어요. 감춰야만 지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그는 반복해서 이야기해 온 거죠.

그렇게 보면 놀란이 톰 홀랜드를 캐스팅한 선택이 새삼 다르게 읽혀요. 스필버그식 "숨김의 서사"를 온몸으로 체화하고 있던 배우를, 놀란은 훨씬 더 오래된 원형, 즉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라는 "숨김의 원조"에게 데려간 셈이니까요. 홀랜드는 캐스팅되는 순간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배우였던 거예요.

 가면은 언제 벗겨져야 완성되는가?

결국 두 이야기 모두 같은 질문으로 수렴해요. "가면은 언제, 어떻게 벗겨져야 그 인물의 이야기가 완성되는가." 오디세우스는 활을 당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 순간에야 가면을 벗어요. 스파이더맨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해낸 순간에야 마스크 아래 얼굴을 드러내죠. 신화든 슈퍼히어로물이든, 좋은 이야기는 가면을 벗기는 타이밍 하나로 완전히 다른 감동을 만들어내요. 다음에 얼굴을 가린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보게 되면, 그 가면이 언제 벗겨질지, 그리고 그 순간이 왜 하필 그때여야 했는지를 한번 눈여겨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얼굴을 숨기는 자들 — 스파이더맨과 오디세우스는 왜 가면을 쓰는가?

이상한 우연이 하나 있어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서도 자기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아요. 걸인 행세를 하고, "시논"이라는 가짜 이름까지 대면서 자기 정체를 숨기죠. 그런데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는 아예 다른 이유로 얼굴을 가려요. 텔레마코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 말고, 놀란이 그를 캐스팅하기 전까지 홀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캐릭터, 스파이더맨이요. 스파이더맨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덮은 채 도시를 뛰어다니는 히어로잖아요.

한쪽은 3천 년 된 서사시의 왕, 한쪽은 마블 세계관의 고등학생 히어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두 캐릭터를 겹쳐놓고 보면 "얼굴을 숨긴다는 것"이 이야기 안에서 얼마나 오래되고, 얼마나 집요하게 반복되는 장치인지가 보여요.

오디세우스의 가면 — 숨어야만 돌아갈 수 있는 남자

 오디세우스가 정체를 숨기는 건 단순한 서스펜스 장치가 아니에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 자기 왕국에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환영이 아니라 그의 자리를 노리는 구혼자들이었잖아요. 오디세우스가 곧바로 "내가 왕이다"라고 밝혔다면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의 가면은 생존의 도구예요. 동시에 그 가면은 그가 더 이상 트로이 전쟁 때의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걸인 행세를 하며 자기 궁전에서 모욕당하는 시간을 견뎌야만, 비로소 왕좌를 되찾을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거죠. 가면은 그를 지켜주는 동시에, 그를 낮추는 장치인 셈이에요.

스파이더맨의 마스크 — 지키기 위해 숨기는 얼굴

피터 파커의 마스크는 정반대의 논리로 움직여요. 그는 왕좌를 되찾으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평범한 삶(메이 이모, 학교 친구들, 좋아하는 여자아이)을 지키기 위해 얼굴을 가려요.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마다 시리즈 전체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마스크가 벗겨진다는 건 단순히 "누가 스파이더맨인지 밝혀진다"는 게 아니라, 그가 지키려던 평범한 삶 전체가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까 오디세우스의 가면이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숨김"이라면,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숨김"이에요. 같은 장치, 다른 목적. 이게 신화와 슈퍼히어로물이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자주 겹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에요.

스필버그도 오랫동안 이 질문을 던져왔다

  재미있는 건 스티븐 스필버그도 이 "숨겨진 정체"라는 주제에 유독 집착해 온 감독이라는 거예요. 《E.T.》에서 외계인은 벽장 안에, 인형들 사이에 숨어야만 살아남고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아예 직업 자체를 위조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스필버그의 카메라는 늘 "숨어야만 하는 존재"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왔어요. 감춰야만 지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그는 반복해서 이야기해 온 거죠.
 그렇게 보면 놀란이 톰 홀랜드를 캐스팅한 선택이 새삼 다르게 읽혀요. 스필버그식 "숨김의 서사"를 온몸으로 체화하고 있던 배우를, 놀란은 훨씬 더 오래된 원형, 즉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라는 "숨김의 원조"에게 데려간 셈이니까요. 홀랜드는 캐스팅되는 순간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배우였던 거예요.

마무리하며 — 가면은 언제 벗겨져야 완성되는가?

  결국 두 이야기 모두 같은 질문으로 수렴해요. "가면은 언제, 어떻게 벗겨져야 그 인물의 이야기가 완성되는가." 오디세우스는 활을 당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 순간에야 가면을 벗어요. 스파이더맨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해낸 순간에야 마스크 아래 얼굴을 드러내죠. 신화든 슈퍼히어로물이든, 좋은 이야기는 가면을 벗기는 타이밍 하나로 완전히 다른 감동을 만들어내요. 다음에 얼굴을 가린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보게 되면, 그 가면이 언제 벗겨질지, 그리고 그 순간이 왜 하필 그때여야 했는지를 한번 눈여겨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