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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에요. <곡성> 이후 나홍진 감독이 스크린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요. 그런데 막상 <호프>가 개봉하고 나니, 다들 예상했던 "명불허전"이라는 반응 대신 훨씬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어요. 같은 영화관, 같은 상영관에서 나온 관객들이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거죠.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면서 나가요. 네이버 평점을 봐도 이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9점과 10점을 준 관객이 절반을 넘고, 1점과 2점을 준 관객도 5분의 1이 넘어요. 평균 점수만 보면 무난한 7점 대지만, 사실 그 숫자 안에는 "중간"이 거의 없는 거예요.
저는 이 현상 자체가 <호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지점이라고 봐요. 단순히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는 흔한 평가로 넘어가기엔, 이번엔 그 갈림의 폭이 유난히 크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이 영화가 왜 이렇게까지 관객을 반으로 쪼개놓는지, 나홍진이라는 감독의 오래된 습관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어볼게요.
나홍진의 카메라는 원래 관객을 배려하지 않았다
사실 이건 <호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추격자>, <황해>, <곡성>을 거치며 나홍진 감독은 한 번도 "친절한" 연출을 한 적이 없어요. 그의 영화는 관객이 편안하게 몰입하도록 서사를 정돈해 주는 대신, 정보를 흩뿌려놓고 관객이 스스로 그 파편을 주워 담게 만드는 방식으로 짜여 있죠. <곡성>에서도 남녀 관객 비율이 55대 45로 갈렸고, <황해>는 그보다 더 심해서 70대 30까지 벌어졌던 전례가 있어요. 이번 <호프>도 남성 관객이 58%, 여성 관객이 42%로, 통상 흥행을 주도하는 여성 관객 비중이 오히려 더 낮게 나타났어요.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나홍진의 영화는 표현 수위가 높고, 상처 위에 소금이 아니라 모래를 뿌리는 듯한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그의 연출 철학 그 자체인 거죠. <호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산불 진압으로 병력이 빠지고 통신마저 끊긴 전남 해남의 외딴 어촌,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는 설정 자체가 이미 "고립"과 "무력함"이라는 나홍진표 공포의 정수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엔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더 붙어요. 500억 원이라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점이에요. 개인적인 취향을 밀어붙이는 감독의 스타일이 이렇게 큰 자본과 만났을 때, 관객이 기대하는 것과 스크린에 실제로 펼쳐지는 것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더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기대하고 들어간 관객에게 나홍진 특유의 불친절한 서사가 그대로 얹히니, 그 낙차가 평가의 극단화로 이어지는 셈이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장르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
<호프>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실 공포나 스릴러의 완성도가 아니라, "이걸 코미디로 봐도 되는가"라는 질문이에요. 극한의 공포 상황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을 두고, 관객들의 해석이 완전히 갈리고 있거든요. 어떤 이들은 이걸 나홍진 특유의 블랙 유머로 받아들이고, 겁에 질려 후들거리던 인물이 후반부로 갈수록 과감하게 뛰어드는 변화 속에서 캐릭터의 성장을 읽어내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그 코믹함이 그저 톤의 혼란처럼 느껴진다고 말해요.
저는 이 지점이야말로 <호프>가 던지는 진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재난과 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웃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그리고 그 웃음이 인간의 나약함을 조롱하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반응을 그대로 포착한 건지. 이 애매함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정황도 있어요. 실제로 결말부에서 특정 자막 처리를 두고,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관객에게도 "이해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남겨두려 했다는 해석이 나오거든요. 신적인 존재, 혹은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압도적인 것을 그리려 했다면, 친절한 설명 대신 여백을 남기는 선택은 오히려 일관된 미학적 태도라고 볼 수 있어요.
물론 이런 여백이 모든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진 않아요. 떡밥만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는 서사, 몰아치다가 갑자기 끝나버리는 결말은 분명 피로감을 줄 수 있는 구조예요. 하지만 저는 이 불친절함이야말로 나홍진이 500억 원짜리 예산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유일한 지점이라고 봐요. 대중성과 작가주의 사이에서,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의 문법을 선택한 거예요.
지금의 혹평이 최종 평가가 아닐 수도 있는 이유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비교가 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도 개봉 당시 비슷한 운명을 겪었거든요. 압도적인 체험을 안기다가 허무하리만큼 갑작스럽게 끝나는 결말 때문에 당시 관객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었죠.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우주전쟁>은 스필버그의 21세기 걸작 중 하나로 재평가받고 있어요. 개봉 직후의 반응이 한 영화의 최종 성적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예요.
<호프>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물론 흥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있어요. 업계에서 추정하는 손익분기점이 국내 관객 700만에서 800만 명 수준인데, 개봉 첫날 33만 명이라는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에도 불구하고 이 숫자를 넘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국 영화 역사에서 700만 관객을 넘긴 작품 자체가 손에 꼽힐 정도니까요. 흥행이라는 잣대로만 보면 <호프>는 여전히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에요.
하지만 저는 흥행 성적과 영화적 가치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창동 감독조차 이 영화를 두고 오락영화의 극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마지막 장면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워요. 거장의 시선에서도 완벽하게 정리되진 않는 영화라는 뜻이니까요. 어쩌면 <호프>는 지금 당장의 흥행 성적표보다, 시간이 지난 뒤 "그때 그 극과 극의 반응이 왜 나왔는지"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영화로 기억될지도 몰라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를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완성도와, 국내 관객들 사이의 뜨거운 논쟁이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단순히 잘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로 정리될 작품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결국 <호프>를 둘러싼 논쟁은 나홍진이라는 감독이 늘 던져왔던 질문의 연장선에 있어요. 편안한 오락을 원하는 관객과,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뭔가를 마주하고 싶은 관객. 여러분은 극장을 나서면서 어느 쪽에 서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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