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우연이 하나 있어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서도 자기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아요. 걸인 행세를 하고, "시논"이라는 가짜 이름까지 대면서 자기 정체를 숨기죠. 그런데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는 아예 다른 이유로 얼굴을 가려요. 텔레마코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 말고, 놀란이 그를 캐스팅하기 전까지 홀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캐릭터, 스파이더맨이요. 스파이더맨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덮은 채 도시를 뛰어다니는 히어로잖아요. 한쪽은 3천 년 된 서사시의 왕, 한쪽은 마블 세계관의 고등학생 히어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두 캐릭터를 겹쳐놓고 보면 "얼굴을 숨긴다는 것"이 이야기 안에서 얼마나 오래되고, 얼마나 집요하게 반복되는 장치..
영화관 불이 꺼지고 놀란의 이름이 스크린에 뜨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 이번엔 또 어떤 방식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하는구나"라는 기대 반, 긴장 반의 감각. 다른 감독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놀란은 이야기를 설계한다. 그것도 아주 짓궂게.시계공의 손놀란의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사람은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니라 시계를 조립한 게 아닐까.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어긋나면 전체가 멈춰버리는, 그런 정교함. 〈메멘토〉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았을 때, 사람들은 "실험적이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게 실험이라기보다는 고백처럼 느껴졌다. 기억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붙잡고 있는 서사조차 편집된 것일 수 있다는 것. 놀란은 그 불안을 관객에게 그대로 옮겨 심는다.그리고 그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