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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리얼리즘- 비토리오 데 시카 <자전거 도둑>


 한때 이탈리아는 영화로 세계를 지배했어요. 할리우드가 흉내 내고 싶어 했던 나라, 프랑스 평론가들이 경배했던 나라, 배우 한 명 한 명이 세계적인 아이콘이었던 나라. 근데 지금 이탈리아 영화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아마 파올로 소렌티노의 오스카 수상작 하나 정도? 나머지는 가물가물하실 거예요.
이상하지 않나요. 세계 영화사를 새로 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조용해졌을까요. 사실 이 이야기는 폐허 속에서 태어난 나라가 부유해지면서 오히려 죽어간, 아주 아이러니한 드라마예요.

   1. 폭탄 맞은 도시에서 태어난 리얼리즘 

  이탈리아 영화의 첫 전성기는 역설적으로 이탈리아가 가장 가난했던 시절에 시작돼요. 2차 대전이 끝난 로마는 폭격으로 부서진 잔해투성이었고, 스튜디오도 세트도 조명 장비도 제대로 없었어요. 그런데 감독들은 이 결핍을 오히려 무기로 썼어요.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진짜 폐허가 된 로마 거리에서, 진짜 비전문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었어요. 그게 바로 네오리얼리즘의 시작이에요. 비토리오 데 시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요. 자전거 한 대를 도둑맞은 실직자의 하루를 따라가는 이야기로, 할리우드식 영웅도 해피엔딩도 없는 영화를 만들죠. 스튜디오 시스템이 만든 화려한 판타지에 질려 있던 세계는 이 날것의 진심에 완전히 무너졌어요.  가난이 만든 스타일이 세계 영화 문법 자체를 바꿔놓은 거예요. 이보다 더 극적인 시작이 있을까요.

   2. 펠리니와 마스트로얀니, 그리고 세계 최고의 영화 공장

  폐허의 리얼리즘 다음에 온 건 화려함의 극단이었어요. 페데리코 펠리니는 로마 근교 치네치타 스튜디오를 근거지 삼아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의 세계를 만들어냈어요. 그리고 그 세계의 얼굴이 되어준 배우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였죠.
 로마의 밤거리를 방황하는 지식인 저널리스트를 연기한 마스트로얀니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유럽 남성미의 새로운 기준이 됐어요. 트레비 분수 장면 하나가 지금도 전 세계 관광객들의 인생 사진 포즈로 남아있을 정도니까요. 여기에 루키노 비스콘티가 귀족적이고 우아한 시선으로, 세르조 레오네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각자의 왕국을 세워요. 레오네와 손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서부극으로 오히려 미국인들을 매료시키는 아이러니를 완성하죠.
 이 시기 치네치타는 '테베레 강변의 할리우드'라고 불렸어요. 세계의 배우와 제작진이 로마로 몰려들었고, 이탈리아는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어요. 가난이 낳은 리얼리즘이 불과 십수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영화 제국으로 성장한 거예요.

   3. TV가 죽인 영화, 그리고 남은 것

  그런데 왕국은 영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탈리아 영화를 무너뜨린 범인은 외부의 경쟁자가 아니라 안방의 텔레비전이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 반전이에요.
1970년대 후반부터 이탈리아 상업 방송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관객들은 극장 대신 집에서 공짜 방송을 보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인물이 나중에 총리까지 되는 미디어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예요. 그가 소유한 상업 방송사들이 영화 산업의 관객과 자본을 동시에 흡수해 버렸고, 이탈리아 영화 제작 편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어요.
 한때 세계 최고의 배우와 감독을 배출하던 나라가, 이제는 자국 극장에서조차 할리우드 영화에 밀리는 처지가 된 거예요. 물론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어요.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사라져가는 동네 영화관에 대한 헌사 같은 영화로 향수를 자극했고, 파올로 소렌티노는 로마의 퇴폐적 아름다움을 그리며 펠리니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하지만 이건 촛불이지 예전의 태양이 아니에요.
 

가난에서 태어나 화려함으로 정점을 찍고, 풍요로움 속에서 조용히 꺼져간 나라. 이탈리아 영화의 흥망성쇠는 결국 '결핍이 예술을 만들고, 안락함이 예술을 죽인다'는 씁쓸한 진실을 보여 준 것 같아요. 여러분은 이 아이러니, 어떻게 보시나요?

세계를 정복했던 나라가 영화를 잃어버린 이유 — 이탈리아 시네마의 흥망성쇠였습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시네마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