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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몰랐다 

닫힌 문 너머의 진실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 자꾸 문이 눈에 들어온다. 열리고 닫히는 문, 반쯤 걸쳐진 문, 저편이 보이지 않는 문.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도 <세일즈맨>에서도 그는 인물들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눠놓는다. 그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관객은 끝까지 모른다. 그냥 짐작만 할 뿐이다. 나는 처음엔 이게 그냥 연출가의 습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를 몇 편 더 보고 나니 알겠더라. 이 사람은 진실이라는 걸 한 번에 보여주지 않으려고 작정한 감독이다.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영화는 끝까지 답을 안 준다. 대신 문 이쪽과 저쪽에 선 사람들의 표정만 계속 보여준다. 그게 오히려 더 무섭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완전히 안다고 믿는 순간, 사실 우리는 그 사람의 절반도 못 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재미있는 건, 이 문이라는 장치가 단순히 시각적으로 예쁜 화면을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두 사람은 같은 사건을 겪고도 전혀 다른 걸 기억한다. 그 어긋남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영화 전체를 끌고 간다. 나는 이걸 보면서 우리 일상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끼리도, 친한 친구 사이에도, 사실 우리는 서로의 절반만 보고 나머지 절반은 각자 상상으로 채워 넣는 게 아닐까. 파르하디의 문은 그래서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그의 태도 그 자체다.

배우를 연기자로 만들지 않는 법

  파르하디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냥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촬영 전 몇 달을 배우들과 대본 리딩만 하면서 보낸다고 알려져 있다. 대사를 외우는 연습이 아니라, 그 인물이 왜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 배우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붙잡고 있는 거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법정 장면을 보면 배우들이 진짜 화가 난 사람들처럼 숨을 몰아쉬고 말을 더듬는다. 대본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좀 부끄러워졌다. 평소에 배우의 연기력을 칭찬할 때 나는 늘 대사 전달력이나 표정 같은 걸 봤는데, 파르하디의 배우들은 그런 걸 넘어서 있었다. 잘 연기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이 저기 있다는 느낌이었다. 더 흥미로운 건 그가 배우들에게 결말을 끝까지 안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자기 인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로 연기를 하니까, 화면에 담기는 표정에 진짜 불안과 진짜 망설임이 섞여 들어간다. 계산된 연기가 아니라 그 순간 실제로 느끼는 감정인 거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장면은 편집을 아무리 잘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질감을 갖는다. 감독이 배우를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배우 스스로 인물이 되도록 시간을 준다는 것, 어쩌면 그게 진짜 연출의 힘일지도 모른다.

이란 영화, 세계의 문을 열다

  이란 영화라고 하면 아직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나도 파르하디를 알기 전까진 그랬다. 그런데 이 감독은 이란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세계 영화계 한복판에 올려놓은 사람이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2012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2017년에는 <세일즈맨>으로 두 번째 트로피를 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그해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미국의 이란인 입국 금지 조치에 항의하는 뜻이었다. 상은 받되 무대에는 서지 않겠다는 태도, 나는 이게 굉장히 그다웠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 자체가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방식. 이란이라는 나라를 정치적 뉴스로만 접하던 사람들에게, 파르하디는 이란에도 이렇게 섬세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그가 그리는 이야기는 사실 이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혼, 거짓말, 계층 갈등, 부부 사이의 균열, 이런 건 서울에서도 파리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자막을 읽으면서도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검열이 심한 나라에서 이 정도로 예리하게 사회를 들여다보는 영화를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생각도 든다. 중동 영화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든 감독,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

                                                                     

세계적 감독이된 아쉬가르 파르하디